- 코르캐쉬
- sokodomo
- lil tecca
- doechii
- mach-hommy
- adam baldych
- adrianne lenker
- wayne snow
- samm henshaw
- fontaines d.c.
- shinjihang
- molly yam
- samarah joy
- clairo
- cindy lee
- pawsa
- son lux
- nakamura haruka
- 4batz
- THAMA
- geordie greep
- jpegmafia
- 장들레
- yves tumor
- devin morrison
- sailorr
- catherine russell
- 루시갱
- 산만한시선
- jonwayne
목록창작/긴글 (7)
날들:날아들다
"너 거기 가면 아는 사람들 안 만나나? 원래 부대 사람이라든지." 2박3일 동원 예비군을 가는 내게 아빠가 물었다. "아니이, 우리 부대는 완전 소규모 부대였는데 이번 예비군은 완전 사방에서 다 온단 말야. 몇 명이 올지도 모르고, 원래 부대 근처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래도, 한 명은 있을 수 있잖아?" "아니요~ 절대 그럴 리 없네요~ 그냥 지인 만나는 것도 힘든데 무슨 같은 부대?" 내가 군인일 때 직접 부대 방문도 해 본 사람이 할 질문은 아니었다.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납득을 시켰다. "...이번에 그럼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 만..." "절 대 아니에요 ." 엄마 차례가 남았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에는 칼 같다. 한번 한 얘기를 다시 하는 것도 싫다. 아침잠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즐기..
다음 날 아침, 화장터와 매장지로 이어지는 행렬의 선두에서 영정사진을 들어야 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았다.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할아버지가 이 땅에 남긴 것들의 대표 역할을 해야 한다니. '장손'의 역할 따위가 존재하는 장례식 절차에 대한 거부감이 치밀었다. 발인 전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랑한다, 편히 쉬어라, 가족을 남겨주어서 감사하다. 가족들이 하나하나 나오는 동안 '즐거운 추억들을 선물해주어서 감사하다'라 말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내 차례가 되어 관 앞에 서자 말문이 턱 막혔고, 간신히 '고생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내어놓고 자리로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단어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아픔과 무딤이 당황스러웠다. 할머니는 울지 않..
자정이 되자 조문객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은 집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새벽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8살부터 고아가 되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는 할아버지. 군대에서 결혼한 할머니에게 애칭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할아버지. 누군가의 잘못으로 화가 났을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때리길 주저하기 않았다는 할아버지. 매일 아침 늦잠을 좋아하던 나에게 비행기를 태우거나 스트레칭을 해 주던 할아버지. 초등학교를 다녀오면 늘 양팔을 벌리고 날 자신의 무릎에 앉히던 할아버지. 소리를 지르며 대문 밖으로 날 발가벗겨 쫓아내거나 손찌검을 하기도 했었던 할아버지. 일요일 오후 내 손을 잡고 몰래 교회에서 나와 집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는 프로야구나..

할아버지의 장례는 가족장이자 기독교장으로 진행되었다. 검소했지만, 장례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을 맡아야 했다. 할아버지의 임종이 평일의 늦은 오후였기에, 둘째 날 오후부터 그 날 밤까지 조문객이 몰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온 똑같은 화환이 건물 밖까지 놓였다. 마을 사람들은 조문을 이유 삼아 장례식장에 모여 함께 술을 마셨고 여든일곱까지 살았던 할아버지의 친구들은 그 중 한 두명에 불과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의 조문객은 전적으로 아버지들의 지인들로 채워졌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부들은 서 있다 앉아도 있다 몇 백번이고 허리를 굽혔고 각자의 지인들에게 아까 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했다.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삼켰으며, 슬프지 않아도 찾아온 사..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인 자식들은 자신들을 반기는 할아버지의 함박웃음을 마주했다. 지난 겨울 두 살배기 증손자의 돌잔치 때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던 사진에서 영정사진에 쓸 얼굴을 가져왔다. 방이 환해 보였다. 영정사진 앞에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던 성경이 시편 23편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할아버지에게 몸과 정신을 모두 자식들에게 의존해야 했던 지난 5년은 무척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금 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쉴 만한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것이리라.태어나서 처음 검은 정장을 입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상가에 갈 때면 속으로 '나도 언젠간 장례식에 갈 텐데, 양복이 없는데 어떡하지' 걱정을 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양복을..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누나의 페이스북 메시지는 무척이나 담담했고, 내 답장 역시 그랬다. 할아버지의 오랜 투병과 건강악화는 충분히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떠안겼다. 강직하고 호탕한 가장이었던 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그 이후 5년간 할아버지의 건강은 나빠지기와 나아기지를 반복했다. 한 번의 악화에는 반드시 이전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존재의 연약함과 초라함이 뒤따랐다. 할아버지는 집에 내려온 나를 보면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으며, 같은 질문을 1분 사이로 되물었고, 끝내는 밥도 스스로 먹지 못했으며 화장실도 스스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모든 것이 익숙해졌고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새롭게 처한 다음 단계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폐허가 된 마당이 보였다. 일순간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원래 대문을 열면, 가게와 창고 사이의 먼지 가득한 좁은 통로와 난리를 피우며 나를 반기는 강아지 포도가 보이고, 통로를 돌아 지나가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마당도 창고도 아닌 누추하고 어두운 공간, 그리고 비로소 보이는 할아버지 방의 흔하지만 정갈한 검은색 현관문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폐허, 조각난 시멘트의 큼직한 파편들과 그 위에서 낑낑거리는 포도, 마당의 벽이 무너져 이제 한 눈에 보이게 된 할아버지의 현관문이 극적이리만큼 공허했다. 할아버지가 삼사십년 동안 해 오던 점포를 정리하기로 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군인 신분 탓에 휴가 때만 집에 들러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번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