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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3일(5)

날들 2023. 3. 27. 22:14

자정이 되자 조문객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은 집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새벽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8살부터 고아가 되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는 할아버지. 군대에서 결혼한 할머니에게 애칭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할아버지. 누군가의 잘못으로 화가 났을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때리길 주저하기 않았다는 할아버지. 매일 아침 늦잠을 좋아하던 나에게 비행기를 태우거나 스트레칭을 해 주던 할아버지. 초등학교를 다녀오면 늘 양팔을 벌리고 날 자신의 무릎에 앉히던 할아버지. 소리를 지르며 대문 밖으로 날 발가벗겨 쫓아내거나 손찌검을 하기도 했었던 할아버지. 일요일 오후 내 손을 잡고 몰래 교회에서 나와 집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는 프로야구나 전국노래자랑을 보던 할아버지.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데려가 뜨겁다는 날 온탕에 억지로 앉히고 더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던 할아버지. 내 성적이 낮으면 기분나빠하며 핀잔을 주던 할아버지. 내가 밥을 참 오지게 먹는다고 호탕하게 웃던 할아버지. 마을과 교회에서 대우받는 어른이었던, 그러나 자주 마을과 교회에 실망하곤 했던 할아버지. 장손의 중요성과 장손을 향한 자신의 특별한 사랑을 강조하던 할아버지. 앓아누운 이후에는 더욱 반찬투정이 심했던 할아버지. 거의 모든 삶이 자신에게 매여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꺼져가던 할아버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간헐적인 숨을 뱉으며 잠을 자던 할아버지. 건강하셔야 한다는, 완전한 진심이 아니었던 내 말을 듣고 힘없이 웃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구원받았을까? 오직 신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가르침에 부합할 만큼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불분명한 행위들로 얽힌 보통의 인생은, 보통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해낼 수 있는 존재라면, 도저히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대다수가 다다르지 못함으로써 권위를 획득하는 구원의 가치는 무엇일까? 공동체를 믿는 어떤 이의 의견처럼 인간이 서로를 구원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존재라면, 나는 할아버지의 구원이었을까?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었거나, 누군가에게 구원을 갈망하게 한 인간에게도 구원의 자격이 주어질까? 그 날 밤 나는 이미 구원이란 없는게 아닐까 하는 직관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쌍한 할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혹은 할아버지를 크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나의 구원을 위해 꾸역꾸역 몇몇 시들한 가능성을 들춰보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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