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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날아들다
[수필] 3일(4) 본문
할아버지의 장례는 가족장이자 기독교장으로 진행되었다. 검소했지만, 장례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을 맡아야 했다. 할아버지의 임종이 평일의 늦은 오후였기에, 둘째 날 오후부터 그 날 밤까지 조문객이 몰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온 똑같은 화환이 건물 밖까지 놓였다. 마을 사람들은 조문을 이유 삼아 장례식장에 모여 함께 술을 마셨고 여든일곱까지 살았던 할아버지의 친구들은 그 중 한 두명에 불과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의 조문객은 전적으로 아버지들의 지인들로 채워졌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부들은 서 있다 앉아도 있다 몇 백번이고 허리를 굽혔고 각자의 지인들에게 아까 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했다.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삼켰으며, 슬프지 않아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며 음식을 먹고 가길 권했다. 아버지들의 교회에서도 여러 팀이 방문했고 똑같은 찬송가를 부르는 여러 번의 예배가 이루어졌다. 나는 장손으로서 조문객을 직접 맞이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고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르기 위해 주방 근처에 있기도 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하루 동안 나는 장례식에서 얼마나 많은 음식이 그냥 버려지는지, 부의금을 어떻게 세고 관리하는지,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일이 모든 순간 진심일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분위기는 묘하게 어둡지가 않았다.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믿고 있었던 내세로서의 천국의 존재가 슬픔을 억제할 수 있는 동기가 된 듯 했다. 특히 할머니는 입관 직전의 할아버지 앞에서도 전혀 울 필요 없다며, 당신 이쁘네, 나중에 봐- 라고 짧은 인사말을 남겼다. 이후에도 청명한 날 가족들 곁에서 험한 꼴 보이지 않고 간 것에 대한 감사를 자주 되뇌었으며, 모든 의례적 순간의 직후에 '하나님 앞에 영광의 박수'라는 말로 특유의 마무리를 했다. 할아버지 슬하의 5남매가 중심이 된 우리 가족의 사이가 요즈음의 다른 가족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끈끈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1년에 3번씩 자리를 함께하며 친목을 다져왔고 나 역시 그 영향으로 사촌동생들을 비롯한 친척들 모두와 어색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함께 있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근황과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나눴고, 일거리가 생길 때면 서로 나섰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할아버지의 유산이었다.
무엇보다 장례식장의 분위기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이제 두 살이 된 조카였다. 조카는 장례식장 곳곳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무한한 생기 그 자체로 존재했다. 아직 죽음과 규칙을 모르는 아이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고, 이를 즐기는 조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경이로울 정도로 맑고 강했다. 조카는 이제 막 시작한 말로 방긋방긋 할미- 이모- 삼촌- 하고 부르며 지목당한 사람을 마냥 미소지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조카는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조카에게서 하리보 젤리 하나와 화장지 몇 칸을 받고서 잠시나마 우울과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카에 대한 고마움이 커지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더욱 삭막하고 외로운 사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새로 태어난 생명이 아무리 밝고 천진하더라도 할아버지의 손에까지 젤리를 쥐어주러 갈 수는 없다. 언뜻 삶과 죽음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이었지만서도, 이 둘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히 구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조카를 보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유치하게도, 할아버지가 지금 조카의 옆에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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