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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3일(1)

날들 2023. 3. 27. 22:09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폐허가 된 마당이 보였다. 일순간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원래 대문을 열면, 가게와 창고 사이의 먼지 가득한 좁은 통로와 난리를 피우며 나를 반기는 강아지 포도가 보이고, 통로를 돌아 지나가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마당도 창고도 아닌 누추하고 어두운 공간, 그리고 비로소 보이는 할아버지 방의 흔하지만 정갈한 검은색 현관문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폐허, 조각난 시멘트의 큼직한 파편들과 그 위에서 낑낑거리는 포도, 마당의 벽이 무너져 이제 한 눈에 보이게 된 할아버지의 현관문이 극적이리만큼 공허했다. 할아버지가 삼사십년 동안 해 오던 점포를 정리하기로 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군인 신분 탓에 휴가 때만 집에 들러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번이 가장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였다. 이층의 문과 할아버지의 방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다들 이미 떠나고 없는 듯했다. 어찌해야 하나 멍하니 포도를 쓰다듬으며 고민하는데 가게 문이 열리고 작은아버지가 나왔다. 왔구나. 왜 바로 장례식장으로 안 가고. ... 그래야 할 줄 몰랐어요. 뭐 좀 챙기려 잠깐 들른 건데, 운이 좋구나, 그치? 운이 좋다, 라는 문장에 멈칫했지만 이내 네, 그렇네요.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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