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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날아들다
[수필] 3일(3) 본문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인 자식들은 자신들을 반기는 할아버지의 함박웃음을 마주했다. 지난 겨울 두 살배기 증손자의 돌잔치 때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던 사진에서 영정사진에 쓸 얼굴을 가져왔다. 방이 환해 보였다. 영정사진 앞에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던 성경이 시편 23편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할아버지에게 몸과 정신을 모두 자식들에게 의존해야 했던 지난 5년은 무척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금 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쉴 만한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것이리라.
태어나서 처음 검은 정장을 입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상가에 갈 때면 속으로 '나도 언젠간 장례식에 갈 텐데, 양복이 없는데 어떡하지' 걱정을 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양복을 빌렸다. 큼직한 양복에 대조될 왜소한 몸와 앳된 얼굴이 신경쓰였다. 아직 스스로가 너무 미숙해 보였다. 남들 눈에도 그럴 것이다.
할아버지는 둘째 날 오전 10시에 입관을 해야 했다.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 할아버지의 왼쪽 손 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할아버지는 낡은 갈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평소에 잠을 자던 모습 그대로였다. 할아버지의 코에 휴지가 끼워져 있었고, 손에는 흰 장갑이, 발은 새끼줄로 묶여 있었으며 볼에는 붉은 빛이 도는 화장이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늘 외적인 모습을 단정히 유지했었던 할아버지는 죽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죽는 순간 몸에서 어떤 노폐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끝까지 흐트러짐 없으려고 노력한 것일까. 지금의 이 말끔한 모습이 시체 관리인의 손길이 아니라 순수한 할아버지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가족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목사인 첫째 고모부가 입관예배를 인도했다. 가족끼리 모였을 때면 늘 부르던 <사철의 봄바람>이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라는 가사에서 완전히 목이 메었다. 성경 구절을 나누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그리곤 첫째 고모부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역사 속 순교자 바울이 겪었던 생사의 고비와 할아버지가 겪었던 고비들 사이의 간극이 그 세월의 차이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지금 내 앞의 절대적인 '무無'의 중력은 보통 사람의 구원을 믿기에는 상상을 넘어서는 무거움이었다. 어제까지 이 오래된 몸에 미약한 바람을 불어넣던 민들레 씨 같은 무언가가 이 중력이 일으킨 마지막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한 사람씩 할아버지의 몸을 붙잡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망설이다 손가락을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손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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