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l tecca
- 장들레
- jonwayne
- samm henshaw
- catherine russell
- shinjihang
- nakamura haruka
- wayne snow
- adrianne lenker
- 4batz
- adam baldych
- sokodomo
- doechii
- devin morrison
- molly yam
- cindy lee
- 산만한시선
- pawsa
- 코르캐쉬
- 루시갱
- geordie greep
- sailorr
- son lux
- samarah joy
- mach-hommy
- fontaines d.c.
- jpegmafia
- yves tumor
- THAMA
- clairo
날들:날아들다
<헤어질 결심> - 박찬욱 본문
"언젠가 네가 꼭 깨어졌으면 좋겠어." 확신에 차서 당시의 주관을 설파하던 대학 새내기에게 한 선배가 애정어린 얼굴로 해 준 말이다. 자기확신의 힘도 좋지만 관계맺음을 통해 변화하며 나아가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헤어질 결심> 훨씬 이전에 사랑이 일으키는 ‘붕괴’에 대해 듣게 된 일이었고, 지금의 내가 진정한 사랑에는 반드시 붕괴가 귀결된다고 생각하게 된 나의 ‘붕괴 계기’ 중 하나다.
요즘엔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주장이 꽤 보편화되었다. 여기에는 사랑의 탈을 쓴 무례에 대한 경계와, 상대를 포용하고자 하는 각오라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내가 최대한 자유롭게,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개인주의적 상호존중에 바탕을 둔 이 낭만적 환상에는 분명 타인에 의해 나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일단 타인의 세계가 침윤하기 시작하면 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의 가치관, 취향, 생활습관, 말투 등 상대와 맞닿은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이 생긴다. 단순히 연인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우정도, 심지어 제 3자와의 우연한 소통이 내게 충격을 가져다주는 경우라도, 그 순간이 진실되었다면 어느 정도의 붕괴는 필연적이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안주하고 싶어하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서로의 흠결에 실망하면서 관계의 깊어짐을 피로하게 느낀다. 하지만 형식적인 예의나 순간의 위로로 그치지 않는 사랑의 결실은 이 과정에서 깨지고 변화하는 나와 우리의 모습에 있다.
<헤어질 결심>의 붕괴 역시 사랑을 수식하지만 위에서 말한 '붕괴'와는 큰 차이가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의 붕괴는 이질성의 교류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금단의 상황’에서 서로의 동질성에 끌렸기에 발생했다. 매혹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아닌 금단의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킨 붕괴인 것이다. 따라서 이 극에서 붕괴라는 단어는 비극적 정념을 증폭시켜 그들의 사랑을 특별함으로 포장하는 착시를 위해서만 사용될 뿐, 어떤 가치랄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붕괴 이후는 어땠는가? 붕괴는 사랑이 찾아오는 하나의 모습이지 결코 사랑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붕괴에는 ‘재건’이 뒤따라야 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얻은 새로운 재료를 통해 나와 우리가 새로운 형태로 건축되어가는 것이 사랑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에는 재건이 없다. 이 안타까운 미결사건에는 ‘완전한 붕괴’, 혹은 ‘붕괴 원인의 제거로 인한 회귀’의 가능성이 있을 뿐 ‘붕괴된 자리의 재건’이 일어날 수는 없다. 결국 금단의 상황이라는 설정 때문에, 이 영화는 사랑이 가진 상상력을 극의 시작부터 파국으로 제한하지만 막상 그 파국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 없다. 오로지 폐허에서 파도치는 정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그 정념이 너무나 사무치기에 만약 누군가 "날들씨는 단어 하나 맘에 안 든다고 <헤어질 결심>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뜸을 들이다 “나는요... 조금 붕괴됐어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상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노라> - 션 베이커 (0) | 2024.11.07 |
---|---|
<사이드웨이> - 알렉산더 페인 (0) | 2023.03.28 |
<우리들> - 윤가은 (0) | 202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