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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 아빠의 날들

날들 2023. 3. 27. 21:49

"며칠 전 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밤 아홉 시 반 쯤일까. 가게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아시냐고 지나가던 동네 분이 물었을 때까지 나는 할머니가 거기 계신지도 몰랐습니다. 나가보니 아직도 겨울옷을 껴입으신 많이 연로하신 할머님이 앉아계셨습니다.
그분이 할머님께 말을 건넵니다. 어디 가시냐고 묻자 집에 갈란디 집을 못 찾겠다는 대답이셨습니다. 묻지도 않은 넋두리를 하시는데, 여든아홉이나 묵었는데 여기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다행히 내가 할머님 집이 짐작이 되어 내 차로 모셔다 드리기로 하고 차에 억지로 태웠습니다. 차에 타기 싫어했던 이유는 금세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어디 멀리 데리고 갈라허요....
집에 가는 거라는 얘기도 불안해하셨는데, 집이 가까워지고서는 안심하시는 듯 했습니다. 엄니 집 맞지요라는 물음에 비닐봉지에 담긴 짐을 챙기는 모습에서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려드리자 돌아서시는 모습이 할머님은 정신도 흐리시지만 앞도 잘 못 보시는 듯 했습니다.
그 다음 나는 깜짝 놀라 얼음이 되었습니다. 굽은 허리의 왜소한 몸으로 맨땅에 엎드려 차를 향해 큰절을 하는 것입니다. 잠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으로 얼른 말리려 했지만 할머니의 머리는 이미 땅바닥에 바짝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귀에 들리는 노쇠하고 힘없는 목소리는
재수보시쇼. 재수보시쇼. 날마다 재수보시쇼......
아침에 밭에 나가서 그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한 할머니의 넋두리가 며칠 밤 계속해서 나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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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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