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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눈을 감아도 선명했다

날들 2023. 3. 27. 22:05

그런 꽃이 있었던 것 같아,
밤에 피었다 해가 뜨면 진다던
문득 정적을 깨고 말했다
그는 이제 시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너무 좋아서 그랬어,
정말로 밝게 빛나는 걸 봤거든
맨눈으로 해를 바라보곤 했다는
그의 눈두덩이는 전부 눈물덩이로 변했다
어둠이 내렸고, 꽃이 피었다
눈물 사이로 꽃이 선명했다
그런데 해가 아니라 꽃이었어
꽃이 눈을 감아도 선명했다


.
180718


나중에 김소연 시인의 <사갈시>라는 작품을 발견함. 유사한 모티브라고 느꼈다.
.


사갈시蛇蝎視 / 김소연
.

내가 설령 울부짖는다 해도 여러 서열의 천사들 중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만일 천사가 하나

갑자기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면 그 강한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리라.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겨우 견딜 수 있는 무서운 일의 시초에 불과하기에.
 
어느 과학자는
태양의 흑점을 너무 오래 쳐다보았다고 했다

무려 25초 동안이나

그래서 눈이 멀었다고 했다
그래도 좋았다고 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마다
노인이 되어본 적이 있었다

무려 25년 동안이나

그래서 죽어본 적도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말하지 않기 위해
바람둥이, 좌파, 모리배, 쇼퍼홀릭으로
산 적이 있다

그래도 좋았고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파리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다

무려 25초 동안이나
이 아름다운 나의 케이크 위에
앉아 있던 파리의

그 좋았던 시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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