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게임

[게임] 마블 스냅

날들 2024. 6. 1. 16:12


1. 게임만 재밌으면 장땡, 이 아니다

<마블 스냅>은 정말 정말 재밌고, 잘 짜여진 게임이다. 하스스톤만큼이나 혁신적이고, 하스스톤 이상으로 캐주얼하다. 거기에 마블 프랜차이즈까지 동원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 건 비주얼 때문이다. 인게임 UI에 중국 양산형 게임 느낌이 있다.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지만 초반엔 카드를 낼 때의 이펙트도, 보이스도 거의 없었다. 아직 사람들이 북미 카툰식 그래픽에 익숙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이 좋아했던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였지, 마블 코믹스가 아니었다.

 
 
 


 

 
 
마케팅도 문제가 있다. 가끔 유튜브 광고가 뜨는데, 이런 양산형 광고를 보고 어떤 한국인이 플레이하고 싶어할까? 마블스냅만의 차별화가 전혀 되지 않았고, 게임의 장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약간 더 잘 만든 다른 영상은 심지어 일본 광고에 그냥 한글 자막만 달았다. 애초에 한국 시장은 타깃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마케팅이 유입의 한계를 만들었다면 마블스냅의 BM(Business Model)은 기존 유저들이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마블 스냅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게임 내 모든 카드를 사용하기가 정말 어렵고, 적은 수의 카드만이 남았을 때 나머지 카드를 얻기 위해서 하스스톤 같은 다른 게임에 비해 유독 많은 재화를 투자해야 한다. (한때는 그렇게 투자했음에도 확률을 뚫지 못하면 얻을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유저들의 카드풀이 제각각이어야 색다른 경험과 카드에 대한 애착을 만들 수 있다는 세컨드디너(마블 스냅 제작사)의 철학 때문이다. 그 대신 카드들 간의 파워 격차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성능 패치를 진행하지만, '올카드'를 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인 유저들은 모두 이 게임을 떠났다. 그런데 세컨드디너는 대부분의 신카드를 매우 강력한 성능으로 출시한다. 상품판매 목적과 동시에 사람들이 신카드를 많이 이용하게 만들려는 목적이다. 따라서 강력한 신카드가 출시될 때마다 재화가 부족한 유저들은 큰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기존의 카드들 중에서도 신카드를 상대할 만한 카드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밸런스가 아니라 단조로운 경험에 있다. 사람들은 기존 카드로 강력한 신카드에 대응하는 것보다 강력한 신카드를 사용하는 쪽을 훨씬 좋아한다. 그건 색다른 경험이니까. 요약하자면 마블스냅의 BM은 돈을 많이 쓰는 유저도, 돈을 적게 쓰거나 무과금인 유저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BM이다. 

나는 세컨드디너가 자신들의 철학을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카드의 획득을 100% 운에 맡겨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카드의 획득을 완전히 '운명'에 맡겨야 애착이 생긴다고 본다. 문방구에서 얼마 없는 돈으로 카드팩을 뜯으며 과연 무슨 카드가 나올까 두근두근하던 어린 날의 경험처럼 말이다. 실제로 나는 유저의 카드획득을 조절하는 기조가 '확률'에서 '재화'로 넘어가기 전, 0.25%의 확률을 뚫고 '갤럭투스' 카드를 획득한 적이 있다. 무척이나 짜릿했고, 다른 카드가 부족해서 정형화된 갤럭투스 덱을 만들 수는 없었더라도 온갖 덱에 갤럭투스를 넣어가며 나만의 덱을 즐겼다. 다른 사람들한텐 없는 나만의 갤럭투스였으니까. 그 시절이 좋았다.

2. 낭만은 불편함에서 온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불편을 겪어가며 획득한 행운과 성취는 곧 낭만이 된다. 세컨드디너는 이를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 '불편한 낭만' 전략이 과연 현 시대와 어울리는가? <마블 스냅>과 같은 캐주얼 카드수집전략게임 장르에 어울리는가?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 현재 2024년엔 게임에 대한 대체재가 많다. 재미있는 시청각매체가 포화 상태다. 게임을 직접 하는 것도 이젠 피곤하다. 그래서 하기보단 '보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한국의) 게이머들 사이에서 '현질'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희석되었기에, 인게임 내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수준의 금액을 지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현 세대는 낭만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자 하는 세대가 아니라, 불편을 제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세대다. 어떻게 얻은 여가시간인데, 또 다른 불편을 겪고 싶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블 스냅>은 하루에 10분, 화장실이나 이동시간에 가볍게 즐기고 말 것을 추구하는 게임이다. 롤이나 와우, 엘든 링처럼 한꺼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을 통해 특정 능력을 키워서 결과를 얻는 컨텐츠도 아니다. <마블스냅>은 애초에 '수고로움'과는 거리가 먼, 멀어야만 하는 포맷이다. 그런데 카드 수집에 이토록 제약이 많다? 현질에도 한계가 있다? 전략의 모순이다.

3. 퀘스트의 함정

나는 <마블 스냅>의 게임성에 탄복한 무과금 백수였고, 마블스냅의 타겟팅에 잘 부합하는 유저였다. 퀘스트만 깨도 현질한 유저와의 실질적 격차가 적었으니까. 즐겁게 게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카드의 수집을 위해 운보다 재화가 중요해지기 시작했고, 그 재화를 보충하기 위한 퀘스트가 늘어났다. 지나친 현질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는 유저친화적이다. 그러나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재화를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매일 도달해야 할 '결승선'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꼴이었다. 안 하고 싶다면 안 하면 그만이라지만, 손해봐도 괜찮은 유저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한국인 유저인데? 어느 순간 아무 감흥 없이 퀘스트를 깨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아무 미련 없이 <마블 스냅>을 삭제했다. 6년간 게임을 안 한 날이 없다시피 했는데, 게임이 놀랄 만큼 수고롭게 느껴졌다.


<마블 스냅>을 마지막으로 게임에 대한 열정이 크게 줄었다. 가끔 게임방송이나 유튜브를 보지만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게임과 밀접한 재미 위주의 삶을 살며 쉽고 빠르게 보상을 얻는 데 익숙해진 게 현생 사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톡스 과정에 있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 내가 배운 것도 있기에, 이를 기록한다.